우리 집 부엌 시계는 4분 빠르다. 나도 알고, 이 아파트에 묵어 본 사람은 누구나 안다. 그런데도 그 시계는 매일 아침 제 몫을 다한다. 나는 시계를 보고, 늦었다는 걸 깨닫고, 서두른다. 그러면 제시간에 도착한다. 모두가 틀렸다는 걸 아는 시계라면 쓸모가 없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우리 집에서 가장 쓸모 있는 물건은 바로 그 시계다.
통하는 거짓말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내가 아는 거의 모든 이에게 그런 시계가 하나씩 있었다. 언니는 차 시계를 7분 빠르게 맞춰 둔다. 한 동료는 침실 시계만 빼고 집 안의 모든 시계를 10분 빠르게 해 두는데, 침실 시계는 정확하다. “그래야 잠을 잘 수 있으니까.” 시장 뒤편 골목의 빵집 주인은 오븐 위 시계를 3분 빠르게 맞춰 둔 채 30년을 지냈다. 왜 그러는지는 자신도 모르겠다고 했다.1
흥미로운 건 그 거짓말이 들통난 뒤에도 계속 통한다는 점이다. 시계가 4분 빠르다는 걸 알면 그저 4분을 빼고 느긋해지면 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빼는 일에는 힘이 들고, 아침의 첫 몇 분 동안 나는 그럴 힘을 아껴 둘 여유가 없다. 시계가 내 산수보다 빠르니, 결국 시계가 이긴다.
말대꾸할 수 있는 시간
그 밖에도 뭔가가 작용하는 것 같다. 정확히 맞는 시계는 권위적이다. 그 시계에는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조금 틀린 시계는 동반자다. 나름의 성격이 있다. 따져도 보고, 투덜거려도 보고, 용서해 줄 수도 있다. 초 단위까지 정확하고 누구에게나 똑같은 휴대전화 시각과 달리, 그런 시계는 집안의 일부가 된다.
공공 시계는 정확해야 하고, 실제로 그래야 한다. 그런 시계가 없다면 페리는 제대로 운항할 수 없을 테니까. 하지만 집에 두는 시계는 우리만의 것이어도 된다. 우리만의 것인 만큼, 우리 나름의 방식으로 틀려도 괜찮다.
내 시계를 정확하게 맞출까 생각해 본 적은 있다. 하지만 그러지 않기로 했다. 그러면 나는 남은 평생 4분씩 늦게 다닐 테니까.
주석
-
다그쳐 묻자 그는 빵은 지금이 몇 시인지 모른다고 했다. 커피를 마시기 전에는 자신도 그렇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