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rss version="2.0" xmlns:content="http://purl.org/rss/1.0/modules/content/"><channel><title>Tidetable</title><description>Tidetable: 페리 시간표에서 빵 굽는 이의 종소리까지, 시간을 알려주는 것들에 관한 Ilse Marrow의 에세이와 편지. 매달 첫째 일요일에 보내는 편지.</description><link>https://journal.folionine.com/ko/</link><language>ko</language><item><title>1시에 떨어지는 공</title><link>https://journal.folionine.com/ko/essays/the-ball-that-falls-at-one/</link><guid isPermaLink="true">https://journal.folionine.com/ko/essays/the-ball-that-falls-at-one/</guid><description>1833년부터 그리니치에서는 빨간 공이 돛대 아래로 내려와 1시를 알렸다. 시간을 전하는 방법으로는 이제껏 고안된 것 가운데 가장 느리고, 가장 정직하다.</description><pubDate>Wed, 04 Nov 2026 00:00:00 GMT</pubDate><content:encoded>&lt;p style=&quot;margin:0 0 1em;font-size:18px;line-height:1.6;color:#171615;&quot;&gt;&lt;span style=&quot;color:#b3241b;text-transform:uppercase;letter-spacing:0.06em;font-size:0.86em;&quot;&gt;매일 오후 1시&lt;/span&gt; 5분 전, 빨간 공이 그리니치 플램스티드 하우스 지붕 위 돛대 중간까지 올라가 멈춘다. 1시 2분 전에는 꼭대기까지 올라간다. 1시 정각, 공이 떨어진다.&lt;sup style=&quot;line-height:0;font-size:0.75em;&quot;&gt;&lt;span style=&quot;color:#b3241b;&quot;&gt;1&lt;/span&gt;&lt;/sup&gt; 공연은 그게 전부이고, 1833년부터 이어져 왔다.&lt;/p&gt;
&lt;p style=&quot;margin:0 0 1em;font-size:18px;line-height:1.6;color:#171615;&quot;&gt;내가 보러 간 목요일, 아래 안뜰에는 우리 마흔 명쯤이 모여 있었다. 대부분은 공이 공답게 움직이는 모습을 찍으려고 휴대전화를 들어 올리고 있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 0 1em;font-size:18px;line-height:1.6;color:#171615;&quot;&gt;나는 얼굴 없는 시계를 보러 왔다. 시보구는 하루에 한 번, 그것을 볼 수 있는 누구에게나 시간을 알려 주며, 소리 하나 내지 않는다. 똑딱이지도 않고, 종을 울리지도 않으며, 바늘도 없다. 5분 동안 준비한 뒤, 1초도 안 되는 순간에 정확한 무언가를 알려 준다.&lt;sup style=&quot;line-height:0;font-size:0.75em;&quot;&gt;&lt;span style=&quot;color:#b3241b;&quot;&gt;2&lt;/span&gt;&lt;/sup&gt; 그것은 시계가 알려 줄 수 있는 다른 무엇보다 그 1초를 더 필요로 했던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졌다.&lt;/p&gt;
&lt;h2 id=&quot;배를-위한-시계&quot; style=&quot;margin:1.6em 0 0.5em;font-size:22px;line-height:1.25;font-weight:600;color:#171615;&quot;&gt;배를 위한 시계&lt;/h2&gt;
&lt;p style=&quot;margin:0 0 1em;font-size:18px;line-height:1.6;color:#171615;&quot;&gt;시보구가 만들어진 대상은 강 위에 있었다. 1830년대, 그리니치 아래쪽 템스강에는 몇 달씩 바다로 떠날 배들이 가득했고, 그 배마다 크로노미터가 한 대씩 실려 있었다. 짐벌식 상자에 넣은, 스프링을 정교하게 조정한 묵직한 시계였다. 그리니치 시각에 맞춰 두고, 항해 내내 가능한 한 그 시각을 유지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 0 1em;font-size:18px;line-height:1.6;color:#171615;&quot;&gt;이유는 경도에 있다. 항해사는 배가 어디에 있든 태양이 가장 높이 뜨는 순간, 즉 현지 정오를 알아낼 수 있다. 크로노미터가 그 현지 정오가 그리니치 시각으로 2시 15분이라고 가리킨다면, 배는 지구 자전으로 따져 서쪽으로 2시간 15분 떨어진 곳에 있고, 지구가 한 시간에 15도씩 자전하므로 그리니치에서 서쪽으로 삼십삼과 사분의 삼 도 떨어진 곳이다. 시각 차이 4분은 경도 1도에 해당한다. 방법은 단순하다. 모든 것이 시계에 달려 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 0 1em;font-size:18px;line-height:1.6;color:#171615;&quot;&gt;그러니 시계는 정확해야 한다. 적어도 오차가 얼마인지는 알고 있어야 한다.&lt;sup style=&quot;line-height:0;font-size:0.75em;&quot;&gt;&lt;span style=&quot;color:#b3241b;&quot;&gt;3&lt;/span&gt;&lt;/sup&gt; 크로노미터가 1초 틀리면 위치는 각도로 15초 어긋나고, 적도에서는 약 사분의 일 해리에 해당한다.&lt;sup style=&quot;line-height:0;font-size:0.75em;&quot;&gt;&lt;span style=&quot;color:#b3241b;&quot;&gt;4&lt;/span&gt;&lt;/sup&gt; 하루에 몇 초씩 오차가 나는 시계는 한 달이 지나면 배의 위치를 아무도 모르게 몇 마일이나 빗나가게 한다. 그 몇 마일이 항구 어귀와 그 옆의 암초를 가르는 차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 0 1em;font-size:18px;line-height:1.6;color:#171615;&quot;&gt;시보구가 생기기 전, 그리니치 시각과 크로노미터를 대조하려는 선장은 그것을 육지로 가져가거나, 부관에게 회중시계를 들려 보내 관측소 시계와 맞춰 보게 한 뒤 결과를 노를 저어 돌아오게 해야 했다. 어느 쪽도 섬세한 기구를 다루는 좋은 방법은 아니다. 시보구는 문제를 뒤집었다. 시계를 시간에 가져가는 대신, 탁 트인 물 위로 빛의 속도로 시간을 시계에 보내 준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 0 1em;font-size:18px;line-height:1.6;color:#171615;&quot;&gt;이 아이디어는 해군 장교 로버트 워코프에게서 나왔다. 그는 1829년 포츠머스에 첫 시보구를 세웠다. 4년 뒤, 왕립천문관장 존 폰드가 관측소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인 플램스티드 하우스 지붕에 그리니치 시보구를 설치했다. 폭풍과 수리로 중단된 때를 빼면, 그 뒤로 줄곧 떨어져 왔다.&lt;/p&gt;
&lt;h2 id=&quot;왜-정오가-아니라-1시일까&quot; style=&quot;margin:1.6em 0 0.5em;font-size:22px;line-height:1.25;font-weight:600;color:#171615;&quot;&gt;왜 정오가 아니라 1시일까&lt;/h2&gt;
&lt;p style=&quot;margin:0 0 1em;font-size:18px;line-height:1.6;color:#171615;&quot;&gt;정오가 당연한 시각처럼 보인다. 천문학자들이 측정하는 때이고, 태양이 직접 알려 주는 시각이니까.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정오를 택하지 않았다. 정오에는 그리니치 천문학자들이 태양이 자오선을 지나는 순간을 재느라 관측 기구 앞에서 바빴고, 시보구를 작동시킬 사람을 따로 낼 수 없었다. 1시라면 일을 마치고 시계를 확인한 뒤 지붕으로 올라갈 한 시간이 있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 0 1em;font-size:18px;line-height:1.6;color:#171615;&quot;&gt;그 기묘한 시각은 그대로 굳어졌다. 다른 항구의 시보구들도 그리니치를 따라 1시에 떨어졌지만, 미국에서는 1845년 워싱턴 해군천문대의 시보구를 시작으로 대체로 정오에 떨어졌다.&lt;sup style=&quot;line-height:0;font-size:0.75em;&quot;&gt;&lt;span style=&quot;color:#b3241b;&quot;&gt;5&lt;/span&gt;&lt;/sup&gt; 서두르는 사람이라면 소수의 직원이 점심을 먹는 시각에 공공 시보를 맞추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시보는 그런 것이었다. 하늘에서 내려온 추상적인 기준이 아니라, 특정한 순간에 건물 꼭대기에 있을 특정한 사람들이 하는 약속이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 0 1em;font-size:18px;line-height:1.6;color:#171615;&quot;&gt;나는 공이 떨어지는 순간보다 그 앞의 5분 예고를 더 좋아한다. 1시 5분 전에 공이 중간까지 올라가면, 그게 신호다. 하던 일을 멈추고 돛대를 찾고, 크로노미터를 열어 연필을 준비하라는 뜻이다. 1시 2분 전에는 공이 꼭대기까지 올라가고, 이제 지켜보면 된다. 신호는 공이 바닥에 닿는 순간이 아니라 움직이기 시작하는 순간이다. 1시에 시선을 돌렸다가 다시 보는 사람은 그 순간을 놓친다. 내일까지는 두 번째 기회가 없다.&lt;/p&gt;
&lt;h2 id=&quot;대포와-공&quot; style=&quot;margin:1.6em 0 0.5em;font-size:22px;line-height:1.25;font-weight:600;color:#171615;&quot;&gt;대포와 공&lt;/h2&gt;
&lt;p style=&quot;margin:0 0 1em;font-size:18px;line-height:1.6;color:#171615;&quot;&gt;어떤 도시들은 소리를 택했다. 에든버러에서는 1861년부터 1시에 성에서 대포를 쏘아 왔고, 일요일과 몇몇 공휴일을 빼면 지금도 그렇다. 대포는 공과 달리 안개 속에서도 작동하고, 알맞은 지붕을 보고 있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닿는다. 하지만 한 가지 약점이 있다. 에든버러에 사는 사람이라면 언젠가 알게 되는 사실인데, 소리는 느리다.&lt;/p&gt;
&lt;p style=&quot;margin:0 0 1em;font-size:18px;line-height:1.6;color:#171615;&quot;&gt;실온의 공기에서 소리는 초속 약 343미터로 나아간다. 성에서 1킬로미터 떨어져 있으면 포성이 3초 늦게 도착하고, 2킬로미터 떨어져 있으면 6초 늦다. 부엌 시계를 맞추는 데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크로노미터의 오차를 재는 데는 재앙이다. 거리를 알고 그만큼 빼지 않는 한.&lt;sup style=&quot;line-height:0;font-size:0.75em;&quot;&gt;&lt;span style=&quot;color:#b3241b;&quot;&gt;6&lt;/span&gt;&lt;/sup&gt; 철도에도 저마다의 소음이 있었다.&lt;/p&gt;
&lt;blockquote lang=&quot;en&quot; dir=&quot;ltr&quot; style=&quot;margin:0 0 1em;padding:0 0 0 16px;border-left:2px solid #b3241b;font-style:italic;color:#171615;&quot;&gt;
&lt;p style=&quot;margin:0 0 1em;font-size:18px;line-height:1.6;color:#171615;&quot;&gt;The startings and arrivals of the cars are now the epochs in the village day. They go and come with such regularity and precision, and their whistle can be heard so far, that the farmers set their clocks by them, and thus one well-conducted institution regulates a whole country.&lt;/p&gt;
&lt;p style=&quot;margin:0 0 1em;font-size:18px;line-height:1.6;color:#171615;&quot;&gt;Henry David Thoreau, &lt;em style=&quot;font-style:italic;&quot;&gt;Walden&lt;/em&gt; (1854), “Sounds”&lt;/p&gt;
&lt;/blockquote&gt;
&lt;p style=&quot;margin:0 0 1em;font-size:18px;line-height:1.6;color:#171615;&quot;&gt;소로는 매사추세츠주 월든 호수를 지나던 철도 노선에 관해 썼다. 그곳 농부들에게는 관측소가 없었다. 기적 소리만 있었고, 선로에서 얼마나 멀리 사느냐에 따라 그 소리도 늦게 들렸다. 에든버러는 같은 문제를 두 가지 방법으로 풀었다. 포스만의 배들이 볼 수 있도록 칼턴 힐의 넬슨 기념비에 시보구를 설치하고, 나머지 사람들을 위해 대포도 쏘았다.&lt;/p&gt;
&lt;p style=&quot;margin:0 0 1em;font-size:18px;line-height:1.6;color:#171615;&quot;&gt;공은 듣는 것이 아니라 보는 것이다. 그리니치에서 강 건너편까지 빛이 도달하는 데에는 백만분의 몇 초밖에 걸리지 않는다. 어떤 선원도 측정할 수 없는 지연이다. 내가 정직하다고 한 것은 그런 뜻이다. 공에는 보정할 것이 없다. 공이 떨어지기 시작하는 것을 보는 사람은 누구나, 어디에 서 있든, 볼 수만 있다면 같은 순간에 그 모습을 본다.&lt;/p&gt;
&lt;p style=&quot;margin:0 0 1em;font-size:18px;line-height:1.6;color:#171615;&quot;&gt;시보구에도 약점은 있다. 밤이나 안개, 폭우 속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바람이 몹시 부는 날에는 올리지도 않는다. 강풍 속에서 돛대를 오르내리는 공은 돛대와 그 아래 사람들에게 위험하기 때문이다. 대포는 어떤 날씨에도 쏠 수 있다. 공은 믿어야 하는 신호다. 어쩌면 그래서 이제 남아 있는 시보구가 그토록 적은지도 모른다.&lt;/p&gt;
&lt;h2 id=&quot;전선&quot; style=&quot;margin:1.6em 0 0.5em;font-size:22px;line-height:1.25;font-weight:600;color:#171615;&quot;&gt;전선&lt;/h2&gt;
&lt;p style=&quot;margin:0 0 1em;font-size:18px;line-height:1.6;color:#171615;&quot;&gt;전신은 시보구의 의미를 바꾸었다. 1850년 무렵까지 시보구는 바로 옆에 있는 시계의 시각만 알릴 수 있었다. 전선이 생기자, 멀리 떨어진 시계의 시각도 알릴 수 있게 되었다. 현지에 있는 사람은 지금이 몇 시인지 몰라도 됐다.&lt;/p&gt;
&lt;p style=&quot;margin:0 0 1em;font-size:18px;line-height:1.6;color:#171615;&quot;&gt;가장 좋은 사례는 켄트 해안의 딜이다. 그곳에서는 배들이 다운스에 머물며 해협을 따라 내려갈 바람을 기다렸다. 다운스는 해안과 굿윈 사주 사이의 바람을 피할 수 있는 해역이다. 1855년, 해안가에 있던 옛 해군성 신호탑에 시보구가 설치되었다. 그 뒤로 시보구는 약 100킬로미터 떨어진 그리니치에서 전기 신호가 도착하면 1시에 떨어졌다. 딜의 관리인은 그리니치와 똑같이 1시 5분 전에 공을 올리고 1시 2분 전에 꼭대기까지 올린 뒤, 전선이 공을 놓아줄 때까지 기다렸다.&lt;sup style=&quot;line-height:0;font-size:0.75em;&quot;&gt;&lt;span style=&quot;color:#b3241b;&quot;&gt;7&lt;/span&gt;&lt;/sup&gt; 간헐적으로 작동하다가 1927년에 멈췄다.&lt;/p&gt;
&lt;p style=&quot;margin:0 0 1em;font-size:18px;line-height:1.6;color:#171615;&quot;&gt;철도는 이미 하나의 시각이 여러 시각보다 운행하기 쉽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레이트 웨스턴 철도는 1840년 십일월부터 노선에서 런던 시각을 사용했고, 1847년에는 철도 청산소가 회원사 모두에 같은 방식을 권고했다. 한동안 영국에는 두 가지 시각이 공존했다. 철도 시각과 각 도시의 태양이 알려 주는 시각이었다. 브리스톨 콘 스트리트의 증권거래소 시계에는 분침이 두 개 있는데, 약 10분 간격으로 벌어져 있다. 하나는 브리스톨 시각을, 다른 하나는 런던 시각을 가리킨다. 그리니치 시각이 영국의 법정 시각이 된 것은 1880년이었다.&lt;/p&gt;
&lt;blockquote lang=&quot;en&quot; dir=&quot;ltr&quot; style=&quot;margin:0 0 1em;padding:0 0 0 16px;border-left:2px solid #b3241b;font-style:italic;color:#171615;&quot;&gt;
&lt;p style=&quot;margin:0 0 1em;font-size:18px;line-height:1.6;color:#171615;&quot;&gt;There was even railway time observed in clocks, as if the sun itself had given in.&lt;/p&gt;
&lt;p style=&quot;margin:0 0 1em;font-size:18px;line-height:1.6;color:#171615;&quot;&gt;Charles Dickens, &lt;em style=&quot;font-style:italic;&quot;&gt;Dombey and Son&lt;/em&gt; (1848), chapter 15&lt;/p&gt;
&lt;/blockquote&gt;
&lt;p style=&quot;margin:0 0 1em;font-size:18px;line-height:1.6;color:#171615;&quot;&gt;디킨스는 런던의 한 동네가 철도 공사로 파헤쳐진 일을 두고 불평하듯 썼다. 지금 읽으면, 시보구와 전선이 해낸 일을 잘 묘사한 글이다. 태양이 굴복한 것은 아니지만, 언덕 위 건물에 있는 시계의 결정에 밀려났다.&lt;/p&gt;
&lt;h2 id=&quot;오늘날-시보구가-하는-일&quot; style=&quot;margin:1.6em 0 0.5em;font-size:22px;line-height:1.25;font-weight:600;color:#171615;&quot;&gt;오늘날 시보구가 하는 일&lt;/h2&gt;
&lt;p style=&quot;margin:0 0 1em;font-size:18px;line-height:1.6;color:#171615;&quot;&gt;라디오가 시보구를 쓸모없게 만들었다. 1924년부터 BBC는 정각 직전에 짧은 신호음 여섯 번을 방송했고, 배는 신호를 잡을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서든 그리니치 시각을 들을 수 있었다. 안개 속에서도, 밤에도, 돛대가 보이지 않아도. 크로노미터는 라디오로 오차를 측정했고, 나중에는 위성으로 측정했다. 이제 세계 대부분은 원자시계가 정한 시각을 별생각 없이 쓴다. 공을 찍던 바로 그 휴대전화의 일부로 말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 0 1em;font-size:18px;line-height:1.6;color:#171615;&quot;&gt;그런데도 시보구는 계속 떨어진다.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의 항구 리틀턴에서는 1876년에 세운 시보구 시설이 2010년과 2011년 지진으로 손상되었고, 그해 유월 여진에 탑이 무너졌다. 시설은 다시 세워져 2018년 십일월에 문을 열었다.&lt;sup style=&quot;line-height:0;font-size:0.75em;&quot;&gt;&lt;span style=&quot;color:#b3241b;&quot;&gt;8&lt;/span&gt;&lt;/sup&gt; 리틀턴에서 크로노미터를 맞추려고 시보구가 필요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래도 사람들은 그것을 다시 지었다. 조부모에게 물려받은 시계를 고치는 것처럼. 시간을 알려고 필요한 게 아니라, 늘 시간을 알려 주던 시계이기 때문에.&lt;/p&gt;
&lt;p style=&quot;margin:0 0 1em;font-size:18px;line-height:1.6;color:#171615;&quot;&gt;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시보구는 시간을 전혀 알려 주지 않는다. 1907년 마지막 밤부터 뉴욕 타임스스퀘어에서는 새해의 시작을 알리기 위해 공을 장대 아래로 내렸다. 뒤집힌 시보구인 셈이다. 꼭대기에서 기다리다가 1시에 출발하는 대신, 1분 동안 천천히 움직여 자정에 도착한다. 하지만 문법은 같다. 모두가 한 가지를, 한순간에 바라보고, 한뜻이 된다.&lt;/p&gt;
&lt;h2 id=&quot;5분의-예고&quot; style=&quot;margin:1.6em 0 0.5em;font-size:22px;line-height:1.25;font-weight:600;color:#171615;&quot;&gt;5분의 예고&lt;/h2&gt;
&lt;p style=&quot;margin:0 0 1em;font-size:18px;line-height:1.6;color:#171615;&quot;&gt;공이 떨어진 뒤에도 나는 안뜰에 남아 있었다. 군중 대부분은 불꽃놀이가 끝난 뒤처럼 곧장 떠났다. 공은 돛대 아래에 가만히 있었고, 내 옆의 한 남자는 시계를 공에 맞춰 확인하더니, 내 생각에는 휴대전화와도 대조해 보고는 둘 다 합격이라도 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lt;/p&gt;
&lt;p style=&quot;margin:0 0 1em;font-size:18px;line-height:1.6;color:#171615;&quot;&gt;공이 주는 것은 사실 시간이 아니다. 안뜰에 있던 누구나 주머니 속에 밀리초 단위까지 정확한 시간을 갖고 있었다. 공이 주는 것은 더 드문 무언가다. 낯선 이들이 같은 것을 바라보며 함께 보내는 5분, 그리고 모두에게 정확히 똑같은 한순간. 떨어지는 순간보다 예고가 중요하다. 미리 준비해야 하는 신호라면 놓치지 않을 가능성도 크다.&lt;/p&gt;
&lt;p style=&quot;margin:0 0 1em;font-size:18px;line-height:1.6;color:#171615;&quot;&gt;나도 나만의 작은 시보구를 두기 시작했다. 평일 1시 5분 전이면 쓰던 것을 멈추고, 1시에 다시 시작한다. 그 덕에 더 시간을 잘 지키게 된 것은 아니다. 하루 한가운데가 생겼다. 대부분의 시계가 해내는 것보다 큰일이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top:2em;padding-top:1em;border-top:1px solid #e6e3de;font-size:15px;color:#5a5650;&quot;&gt;&lt;div style=&quot;margin:0 0 0.5em;font-size:12px;letter-spacing:0.14em;text-transform:uppercase;color:#5a5650;&quot;&gt;주석&lt;/div&gt;
&lt;ol style=&quot;margin:0 0 1em;padding:0 0 0 22px;font-size:18px;line-height:1.6;color:#171615;&quot;&gt;
&lt;li style=&quot;margin:0 0 0.35em;&quot;&gt;
&lt;p style=&quot;margin:0 0 1em;font-size:18px;line-height:1.6;color:#171615;&quot;&gt;시각은 왕립천문대가 방문객에게 안내하는 것이다. 시보구는 겨울에는 그리니치 평균시, 여름에는 영국 서머타임에 맞춰 작동한다. 그래서 여름에는 태양의 시간으로 정오 무렵에 떨어진다. 오차가 조금 있기는 하지만. &lt;/p&gt;
&lt;/li&gt;
&lt;li style=&quot;margin:0 0 0.35em;&quot;&gt;
&lt;p style=&quot;margin:0 0 1em;font-size:18px;line-height:1.6;color:#171615;&quot;&gt;돛대 아래쪽 말고 꼭대기를 보라. 시보구가 떨어질 때쯤이면, 그 구가 알리려던 순간은 이미 지나가 있다. &lt;/p&gt;
&lt;/li&gt;
&lt;li style=&quot;margin:0 0 0.35em;&quot;&gt;
&lt;p style=&quot;margin:0 0 1em;font-size:18px;line-height:1.6;color:#171615;&quot;&gt;항해사는 크로노미터를 다시 맞추지 않았다. 얼마나 틀렸는지(오차)와 그 오차가 하루에 얼마나 달라지는지(일차)를 적어 두고, 계산할 때 둘 다 반영했다. 시곗바늘을 움직이려고 뚜껑을 여는 일은 오차가 조금씩 쌓이는 것보다 더 큰 해를 끼쳤을 것이다. &lt;/p&gt;
&lt;/li&gt;
&lt;li style=&quot;margin:0 0 0.35em;&quot;&gt;
&lt;p style=&quot;margin:0 0 1em;font-size:18px;line-height:1.6;color:#171615;&quot;&gt;지구는 24시간 동안 360도를 도는데, 시간 1초마다 각도 15초에 해당한다. 위도 1분은 1해리이므로, 각도 15초는 그것의 사분의 일이다. 적도에서 멀어지면 경도선 사이가 좁아지고, 오차도 그만큼 줄어든다. &lt;/p&gt;
&lt;/li&gt;
&lt;li style=&quot;margin:0 0 0.35em;&quot;&gt;
&lt;p style=&quot;margin:0 0 1em;font-size:18px;line-height:1.6;color:#171615;&quot;&gt;워싱턴의 시보구는 1845년부터 현지 시각 정오에 떨어졌다. 미국 항구의 배들도 템스강의 배들과 똑같은 문제를 겪었다. 다만 점심시간을 다르게 잡아 해결했을 뿐이다. &lt;/p&gt;
&lt;/li&gt;
&lt;li style=&quot;margin:0 0 0.35em;&quot;&gt;
&lt;p style=&quot;margin:0 0 1em;font-size:18px;line-height:1.6;color:#171615;&quot;&gt;약 20 °C에서 그렇다. 차가운 공기에서는 소리가 조금 더 느리게 퍼진다. 영하에서는 초속 약 331미터이므로, 1월 오후라면 대포 소리는 더 늦게 들린다. &lt;/p&gt;
&lt;/li&gt;
&lt;li style=&quot;margin:0 0 0.35em;&quot;&gt;
&lt;p style=&quot;margin:0 0 1em;font-size:18px;line-height:1.6;color:#171615;&quot;&gt;전선은 늘 믿을 만했던 것은 아니다. 어떤 날은 신호가 너무 약해 시보구를 풀어 주지 못했고, 아예 도착하지 않는 날도 있었다. 몇 해 동안 전선은 제대로 절연되지 않은 채 지하로 이어져 있었다. 바다 가까이서 그런 식으로 해 두면 탈이 나기 마련이다. &lt;/p&gt;
&lt;/li&gt;
&lt;li style=&quot;margin:0 0 0.35em;&quot;&gt;
&lt;p style=&quot;margin:0 0 1em;font-size:18px;line-height:1.6;color:#171615;&quot;&gt;나는 리틀턴에 가 본 적이 없다. 내가 아는 것은 재건된 탑의 사진뿐이다. 다시 지은 것들이 흔히 그렇듯, 그 탑은 옛 탑보다 스스로를 조금 더 확신하는 듯 보인다. &lt;/p&gt;
&lt;/li&gt;
&lt;/ol&gt;
&lt;/div&gt;</content:encoded><category>에세이</category></item><item><title>막차는 약속이다</title><link>https://journal.folionine.com/ko/essays/the-last-train-is-a-promise/</link><guid isPermaLink="true">https://journal.folionine.com/ko/essays/the-last-train-is-a-promise/</guid><description>23:52 막차는 매일 밤 마을을 거의 텅 비워 놓고 떠난다. 그 열차를 필요로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운행해야 한다.</description><pubDate>Sun, 01 Nov 2026 00:00:00 GMT</pubDate><content:encoded>&lt;p style=&quot;margin:0 0 1em;font-size:18px;line-height:1.6;color:#171615;&quot;&gt;&lt;span style=&quot;color:#b3241b;text-transform:uppercase;letter-spacing:0.06em;font-size:0.86em;&quot;&gt;도시를 떠나는 막차는 자정&lt;/span&gt; 8분 전에 출발하고, 대부분의 밤에는 객차 수보다 승객 수가 적다. 나는 세어 보았다. 시월의 어느 화요일, 여섯 량에 탄 사람은 모두 열한 명이었다. 야간 근무를 마치고 집으로 가는 간호사 둘, 첫 역부터 잠든 첼로 케이스를 든 남자, 작별 인사도 없이 함께 내린 학생들, 그리고 나머지 우리. 우리는 저마다 진행 방향과 반대로 놓인 좌석에 앉아, 플랫폼의 불빛이 하나씩 꺼져 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lt;/p&gt;
&lt;p style=&quot;margin:0 0 1em;font-size:18px;line-height:1.6;color:#171615;&quot;&gt;어떤 계산으로 따져도 23:52는 존재해서는 안 된다. 버스라면 비용의 10분의 1로 같은 일을 할 테고, 간호사들에게 택시 이용권을 주는 편이 더 저렴할 것이다. 운영사도 그 사실을 안다. 몇 년마다 컨설턴트가 보고서의 표에 그렇게 적어 낸다.&lt;sup style=&quot;line-height:0;font-size:0.75em;&quot;&gt;&lt;span style=&quot;color:#b3241b;&quot;&gt;1&lt;/span&gt;&lt;/sup&gt; 그런데도 열차는 운행하고, 나는 이제 그 열차가 진짜 열차가 아니기 때문에 달리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시간표 맨 아래에 인쇄된 약속이기 때문이다.&lt;/p&gt;
&lt;h2 id=&quot;마지막-행이-말하는-것&quot; style=&quot;margin:1.6em 0 0.5em;font-size:22px;line-height:1.25;font-weight:600;color:#171615;&quot;&gt;마지막 행이 말하는 것&lt;/h2&gt;
&lt;p style=&quot;margin:0 0 1em;font-size:18px;line-height:1.6;color:#171615;&quot;&gt;어떤 시간표든 아래에서 위로 읽으면 성격이 달라진다. 앞쪽 열은 수송 능력에 관한 것이다. 몇 명을, 얼마나 자주, 얼마나 빠르게 실어 나를 수 있는지. 마지막 열은 다른 무언가에 관한 것이다. 얼마나 늦게까지 밖에 있어도 되는지, 대화가 집에서 얼마나 멀리까지 흘러가다가 멈춰야 하는지 알려 준다. 저녁의 바깥 경계를 정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 0 1em;font-size:18px;line-height:1.6;color:#171615;&quot;&gt;철도가 막차를 없애면, 항의하는 사람들은 그 열차를 이용했던 사람이 아닌 경우가 드물다. 이용할 수도 있었던 사람들이다. 23:52를 단 한 번도 놓친 적 없는 여자도, 그 열차를 탈 수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저녁 식사 시간을 정한다. 막차를 없애면 저녁은 열 시에 끝난다. 이제 위험이 생겼고, 위험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기 때문이다.&lt;/p&gt;
&lt;blockquote style=&quot;margin:0 0 1em;padding:0 0 0 16px;border-left:2px solid #b3241b;font-style:italic;color:#171615;&quot;&gt;
&lt;p style=&quot;margin:0 0 1em;font-size:18px;line-height:1.6;color:#171615;&quot;&gt;시간표는 시각의 목록이다. 마지막 행은 허락의 목록이다.&lt;/p&gt;
&lt;/blockquote&gt;
&lt;p style=&quot;margin:0 0 1em;font-size:18px;line-height:1.6;color:#171615;&quot;&gt;나는 시월의 그 화요일, 승차권 뒷면에 그 문장을 적었다. 지금도 그 말을 믿는다. 다만 아침보다 자정에 읽을 때 더 잘 어울린다.&lt;/p&gt;
&lt;h2 id=&quot;누구를-위한-것인가&quot; style=&quot;margin:1.6em 0 0.5em;font-size:22px;line-height:1.25;font-weight:600;color:#171615;&quot;&gt;누구를 위한 것인가&lt;/h2&gt;
&lt;p style=&quot;margin:0 0 1em;font-size:18px;line-height:1.6;color:#171615;&quot;&gt;간호사들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답이고, 그들은 중요하다. 밤에 일하는 사람을 원하는 마을이라면, 누군가 깨어 기다려 주지 않아도 집에 돌아갈 방법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하지만 첼리스트도 중요하고, 학생들도 중요하며, 그 열차에 탄 나 같은 사람도 중요하다. 좋은 일에 너무 오래 머물렀던 사람 말이다. 막차는 마을이 이렇게 말하는 방식이다. 너무 오래 머물러도 괜찮다고, 지나치지 않는 선에서, 한 번쯤은.&lt;/p&gt;
&lt;p style=&quot;margin:0 0 1em;font-size:18px;line-height:1.6;color:#171615;&quot;&gt;몇 정거장쯤 갔을 때, 기관사가 전력을 아끼려고 텅 빈 객차들의 조명을 어둡게 하는 순간이 있다. 그러면 열차는 불이 켜진 우리 객차만 남긴 채 어둠 속을 달린다. 집에서 통째로 옮겨 온 방처럼.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첼리스트는 잠들어 있다. 내가 아는 한, 완전히 혼자일 수 있는 가장 공적인 장소다.&lt;/p&gt;
&lt;h2 id=&quot;약속의-대가&quot; style=&quot;margin:1.6em 0 0.5em;font-size:22px;line-height:1.25;font-weight:600;color:#171615;&quot;&gt;약속의 대가&lt;/h2&gt;
&lt;p style=&quot;margin:0 0 1em;font-size:18px;line-height:1.6;color:#171615;&quot;&gt;재정위원회가 받아들일 만한 주장이라고 우기지는 않겠다. 약속이 비싼 까닭은 바로 필요하지 않은 밤에도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야 약속이지, 서비스가 아니다.&lt;sup style=&quot;line-height:0;font-size:0.75em;&quot;&gt;&lt;span style=&quot;color:#b3241b;&quot;&gt;2&lt;/span&gt;&lt;/sup&gt; 23:52가 만석일 때만 운행하는 날이 오면, 그 열차는 더는 막차가 아니라 그저 늦게 다니는 열차 한 대가 될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 0 1em;font-size:18px;line-height:1.6;color:#171615;&quot;&gt;그래서 나는 승객 수를 세고, 그 숫자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는다. 열한 명은 적은 수다. 동시에 마을을 ’집에 돌아갈 수 있다’는 사실로 채우기에 꼭 충분한 수이기도 하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top:2em;padding-top:1em;border-top:1px solid #e6e3de;font-size:15px;color:#5a5650;&quot;&gt;&lt;div style=&quot;margin:0 0 0.5em;font-size:12px;letter-spacing:0.14em;text-transform:uppercase;color:#5a5650;&quot;&gt;주석&lt;/div&gt;
&lt;ol style=&quot;margin:0 0 1em;padding:0 0 0 22px;font-size:18px;line-height:1.6;color:#171615;&quot;&gt;
&lt;li style=&quot;margin:0 0 0.35em;&quot;&gt;
&lt;p style=&quot;margin:0 0 1em;font-size:18px;line-height:1.6;color:#171615;&quot;&gt;가장 최근 보고서는 신중하고 공정하며, 분량은 마흔 쪽쯤 된다. 권고 사항은 둘째 문단에 나온다. 나머지 서른아홉 쪽은 왜 아무도 그 권고를 따르지 않을지 설명한다. &lt;/p&gt;
&lt;/li&gt;
&lt;li style=&quot;margin:0 0 0.35em;&quot;&gt;
&lt;p style=&quot;margin:0 0 1em;font-size:18px;line-height:1.6;color:#171615;&quot;&gt;그 구분은 할머니에게서 나온 말이다. 기차가 아니라 등대에 대해 하신 말이었다. 할머니는 등대를 본 적이 없었다. 그 말은 할머니의 형제에 관한 것이었다. 할 말이 있든 없든 매주 일요일마다 전화를 걸던 사람. &lt;/p&gt;
&lt;/li&gt;
&lt;/ol&gt;
&lt;/div&gt;</content:encoded><category>에세이</category></item><item><title>첼리스트, 또</title><link>https://journal.folionine.com/ko/notes/the-cellist/</link><guid isPermaLink="true">https://journal.folionine.com/ko/notes/the-cellist/</guid><description>첼로 케이스를 든 남자는 또 막차에 타고 있었다. 첫 역부터 잠들어 있었다. 단골 승객이 된다는 것에 대한 짧은 메모.</description><pubDate>Tue, 20 Oct 2026 00:00:00 GMT</pubDate><content:encoded>&lt;p style=&quot;margin:0 0 1em;font-size:18px;line-height:1.6;color:#171615;&quot;&gt;첼로 케이스를 든 남자는 또 23:52 열차에 타고 있었다. 전처럼 첫 역부터 잠들어 있었고, 한 손은 케이스 위에 얹어 두었다. 마치 케이스가 자기만 두고 떠나기라도 할 것처럼. 나는 이제 그를 네 번 보았지만, 깨어 있는 모습은 한 번도 보지 못했다. 그리고 그가 어디서 연주하는지 알고 싶지 않다고 마음먹었다. 어떤 단골 승객들은 그저 날씨처럼 남겨 두는 편이 낫다.&lt;/p&gt;
</content:encoded><category>짧은 글</category></item><item><title>4분, 후속 글</title><link>https://journal.folionine.com/ko/notes/four-minutes/</link><guid isPermaLink="true">https://journal.folionine.com/ko/notes/four-minutes/</guid><description>부엌 시계에 관한 글을 쓴 뒤, 독자들이 자기 집의 틀린 시계 이야기를 보내왔다. 가장 흔한 차이는 5분이었고, 기록은 22분이다.</description><pubDate>Sun, 12 Jul 2026 00:00:00 GMT</pubDate><content:encoded>&lt;p style=&quot;margin:0 0 1em;font-size:18px;line-height:1.6;color:#171615;&quot;&gt;내 부엌 시계에 관한 글을 쓴 뒤, 독자들이 자기 집의 틀린 시계 이야기를 보내왔다. 빨리 가거나 느리게 가는 시계도 있었고, 한 독자는 일부러 거꾸로 가게 해두었다고 했다. 가장 흔한 차이는 5분이다. 기록은 22분으로, 한 번도 늦은 적이 없고 지금이 몇 시인지 한 번도 알지 못했다고 하는 독자가 세웠다. 이름은 싣지 않겠다. 이런 시계는 하나같이 집안의 비밀이다.&lt;/p&gt;
</content:encoded><category>짧은 글</category></item><item><title>부엌 시계는 4분 빠르다</title><link>https://journal.folionine.com/ko/essays/the-kitchen-clock/</link><guid isPermaLink="true">https://journal.folionine.com/ko/essays/the-kitchen-clock/</guid><description>집집마다 일부러 틀리게 맞춰 둔 시계가 하나씩 있다. 시간에 관해 우리가 스스로에게 하는 작은 거짓말, 그리고 그 거짓말이 왜 통하는지에 대하여.</description><pubDate>Sun, 07 Jun 2026 00:00:00 GMT</pubDate><content:encoded>&lt;p style=&quot;margin:0 0 1em;font-size:18px;line-height:1.6;color:#171615;&quot;&gt;&lt;span style=&quot;color:#b3241b;text-transform:uppercase;letter-spacing:0.06em;font-size:0.86em;&quot;&gt;우리 집 부엌 시계는&lt;/span&gt; 4분 빠르다. 나도 알고, 이 아파트에 묵어 본 사람은 누구나 안다. 그런데도 그 시계는 매일 아침 제 몫을 다한다. 나는 시계를 보고, 늦었다는 걸 깨닫고, 서두른다. 그러면 제시간에 도착한다. 모두가 틀렸다는 걸 아는 시계라면 쓸모가 없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우리 집에서 가장 쓸모 있는 물건은 바로 그 시계다.&lt;/p&gt;
&lt;h2 id=&quot;통하는-거짓말&quot; style=&quot;margin:1.6em 0 0.5em;font-size:22px;line-height:1.25;font-weight:600;color:#171615;&quot;&gt;통하는 거짓말&lt;/h2&gt;
&lt;p style=&quot;margin:0 0 1em;font-size:18px;line-height:1.6;color:#171615;&quot;&gt;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내가 아는 거의 모든 이에게 그런 시계가 하나씩 있었다. 언니는 차 시계를 7분 빠르게 맞춰 둔다. 한 동료는 침실 시계만 빼고 집 안의 모든 시계를 10분 빠르게 해 두는데, 침실 시계는 정확하다. “그래야 잠을 잘 수 있으니까.” 시장 뒤편 골목의 빵집 주인은 오븐 위 시계를 3분 빠르게 맞춰 둔 채 30년을 지냈다. 왜 그러는지는 자신도 모르겠다고 했다.&lt;sup style=&quot;line-height:0;font-size:0.75em;&quot;&gt;&lt;span style=&quot;color:#b3241b;&quot;&gt;1&lt;/span&gt;&lt;/sup&gt;&lt;/p&gt;
&lt;p style=&quot;margin:0 0 1em;font-size:18px;line-height:1.6;color:#171615;&quot;&gt;흥미로운 건 그 거짓말이 들통난 뒤에도 계속 통한다는 점이다. 시계가 4분 빠르다는 걸 알면 그저 4분을 빼고 느긋해지면 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빼는 일에는 힘이 들고, 아침의 첫 몇 분 동안 나는 그럴 힘을 아껴 둘 여유가 없다. 시계가 내 산수보다 빠르니, 결국 시계가 이긴다.&lt;/p&gt;
&lt;h2 id=&quot;말대꾸할-수-있는-시간&quot; style=&quot;margin:1.6em 0 0.5em;font-size:22px;line-height:1.25;font-weight:600;color:#171615;&quot;&gt;말대꾸할 수 있는 시간&lt;/h2&gt;
&lt;p style=&quot;margin:0 0 1em;font-size:18px;line-height:1.6;color:#171615;&quot;&gt;그 밖에도 뭔가가 작용하는 것 같다. 정확히 맞는 시계는 권위적이다. 그 시계에는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조금 틀린 시계는 동반자다. 나름의 성격이 있다. 따져도 보고, 투덜거려도 보고, 용서해 줄 수도 있다. 초 단위까지 정확하고 누구에게나 똑같은 휴대전화 시각과 달리, 그런 시계는 집안의 일부가 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 0 1em;font-size:18px;line-height:1.6;color:#171615;&quot;&gt;공공 시계는 정확해야 하고, 실제로 그래야 한다. 그런 시계가 없다면 페리는 제대로 운항할 수 없을 테니까. 하지만 집에 두는 시계는 우리만의 것이어도 된다. 우리만의 것인 만큼, 우리 나름의 방식으로 틀려도 괜찮다.&lt;/p&gt;
&lt;p style=&quot;margin:0 0 1em;font-size:18px;line-height:1.6;color:#171615;&quot;&gt;내 시계를 정확하게 맞출까 생각해 본 적은 있다. 하지만 그러지 않기로 했다. 그러면 나는 남은 평생 4분씩 늦게 다닐 테니까.&lt;/p&gt;
&lt;div style=&quot;margin-top:2em;padding-top:1em;border-top:1px solid #e6e3de;font-size:15px;color:#5a5650;&quot;&gt;&lt;div style=&quot;margin:0 0 0.5em;font-size:12px;letter-spacing:0.14em;text-transform:uppercase;color:#5a5650;&quot;&gt;주석&lt;/div&gt;
&lt;ol style=&quot;margin:0 0 1em;padding:0 0 0 22px;font-size:18px;line-height:1.6;color:#171615;&quot;&gt;
&lt;li style=&quot;margin:0 0 0.35em;&quot;&gt;
&lt;p style=&quot;margin:0 0 1em;font-size:18px;line-height:1.6;color:#171615;&quot;&gt;다그쳐 묻자 그는 빵은 지금이 몇 시인지 모른다고 했다. 커피를 마시기 전에는 자신도 그렇다고 덧붙였다. &lt;/p&gt;
&lt;/li&gt;
&lt;/ol&gt;
&lt;/div&gt;</content:encoded><category>에세이</category></item><item><title>역 시계는 매분 정각에 잠시 멈춘다</title><link>https://journal.folionine.com/ko/notes/the-station-clock/</link><guid isPermaLink="true">https://journal.folionine.com/ko/notes/the-station-clock/</guid><description>역의 큰 시계는 매분 정각에 잠시 멈춰 신호를 기다린다. 함께 시간을 맞추는 법에 관한 이야기.</description><pubDate>Sun, 05 Apr 2026 00:00:00 GMT</pubDate><content:encoded>&lt;p style=&quot;margin:0 0 1em;font-size:18px;line-height:1.6;color:#171615;&quot;&gt;역 대합실의 큰 시계가 올봄 전까지는 내가 한 번도 눈여겨보지 못한 일을 한다. 초침은 1초 간격보다 조금 빠르게 움직이다가 매분 정각에 멈춰, 어디선가 올 신호를 기다리며 완벽히 고요해진다. 그러고는 분침이 툭 움직이고 시계는 다시 가기 시작한다. 잠시 틀렸다가 다시 맞아지는 방식으로 시간을 맞춘다. 그보다 못한 삶의 방식도 얼마든지 떠올릴 수 있다.&lt;/p&gt;
</content:encoded><category>짧은 글</category></item><item><title>조석표 읽기</title><link>https://journal.folionine.com/ko/essays/reading-a-tide-table/</link><guid isPermaLink="true">https://journal.folionine.com/ko/essays/reading-a-tide-table/</guid><description>조석표는 미리 계산해 창문에 붙여 둔 바다의 한 해다. 조석표를 어떻게 읽는지, 그리고 무엇을 알려주지 않는지 살펴본다.</description><pubDate>Sun, 01 Feb 2026 00:00:00 GMT</pubDate><content:encoded>&lt;p style=&quot;margin:0 0 1em;font-size:18px;line-height:1.6;color:#171615;&quot;&gt;&lt;span style=&quot;color:#b3241b;text-transform:uppercase;letter-spacing:0.06em;font-size:0.86em;&quot;&gt;항구 사무실 창문에는 바다의&lt;/span&gt; 일 년을 예측한 종이 한 장이 붙어 있다. 매일 두 번의 만조와 두 번의 간조 시각, 그리고 각 조수의 높이가 몇 센티미터인지 적혀 있다. 새해가 시작되기 전에 인쇄된 것이다. 누구나 보기에도 틀림이 없다.&lt;/p&gt;
&lt;p style=&quot;margin:0 0 1em;font-size:18px;line-height:1.6;color:#171615;&quot;&gt;나는 이것이 마을에서 보관하는 문서 가운데 가장 놀라운 것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읽어 보려고 걸음을 멈추는 사람은 거의 없다.&lt;/p&gt;
&lt;h2 id=&quot;바다를-예측하는-법&quot; style=&quot;margin:1.6em 0 0.5em;font-size:22px;line-height:1.25;font-weight:600;color:#171615;&quot;&gt;바다를 예측하는 법&lt;/h2&gt;
&lt;p style=&quot;margin:0 0 1em;font-size:18px;line-height:1.6;color:#171615;&quot;&gt;조수는 날씨가 아니다. 산술이다. 달과 태양이 물을 끌어당기고, 그 힘이 측정할 수 있는 주기로 되풀이되기 때문에 바닷물이 오르내린다. 달이 이끄는 주요 주기는 열두 시간 이십오 분을 조금 넘는다. 그래서 만조는 날마다 약 오십 분씩 늦게 찾아온다.&lt;sup style=&quot;line-height:0;font-size:0.75em;&quot;&gt;&lt;span style=&quot;color:#b3241b;&quot;&gt;1&lt;/span&gt;&lt;/sup&gt; 여기에 태양의 더 짧은 주기와 달 궤도의 느린 흔들림, 그리고 각 해안의 지형을 더하면 수년 뒤의 바다도 계산할 수 있다. 사무실에서는 내일의 조석을 관측하지 않는다. 조석표에서 찾아본다.&lt;/p&gt;
&lt;p style=&quot;margin:0 0 1em;font-size:18px;line-height:1.6;color:#171615;&quot;&gt;이곳의 조차는 작다. 평범한 날에는 만조와 간조의 높이 차가 식탁 높이보다 낮아서, 대양 연안에서 온 방문객들은 이를 우습게 여긴다. 하지만 작다고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식탁 높이만큼의 물이 차고 빠지는 일이 어시장의 오래된 계단이 물 밖으로 드러날지, 흘수가 깊은 배가 계류장을 떠날 수 있을지, 아이들이 쇠고리가 박힌 바위까지 걸어갈 수 있을지를 결정한다.&lt;/p&gt;
&lt;h2 id=&quot;조석표가-알려주지-않는-것&quot; style=&quot;margin:1.6em 0 0.5em;font-size:22px;line-height:1.25;font-weight:600;color:#171615;&quot;&gt;조석표가 알려주지 않는 것&lt;/h2&gt;
&lt;p style=&quot;margin:0 0 1em;font-size:18px;line-height:1.6;color:#171615;&quot;&gt;조석표에는 커다란 침묵이 하나 있다. 이곳 사람들은 일찍부터 그 사실을 배운다. 조석표는 달이 일으키는 바다를 예측한다. 바람이 일으키는 바다는 예측할 수 없다. 남풍이 세게 불면 물이 해안으로 밀려와 인쇄된 예측보다 만조 수위가 높아진다. 겨울이면 고원에서 불어 내려오는 동북풍이 바다를 밀어내 항구의 수위를 누구도 예상한 것보다 낮출 수 있다.&lt;sup style=&quot;line-height:0;font-size:0.75em;&quot;&gt;&lt;span style=&quot;color:#b3241b;&quot;&gt;2&lt;/span&gt;&lt;/sup&gt;&lt;/p&gt;
&lt;p style=&quot;margin:0 0 1em;font-size:18px;line-height:1.6;color:#171615;&quot;&gt;그러니 하늘을 살피며 조석표를 읽는다. 내가 물어본 어부들은 조석표를 믿지도, 무시하지도 않는다. 아주 친한 친구가 알려주는 길을 대하듯 한다. 길은 맞게 알려주지만, 교통 사정은 틀릴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 0 1em;font-size:18px;line-height:1.6;color:#171615;&quot;&gt;미래를 안다고 주장하는 인쇄물은 대개 그렇게 읽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계산을 읽고, 그다음 창밖을 내다보라.&lt;/p&gt;
&lt;div style=&quot;margin-top:2em;padding-top:1em;border-top:1px solid #e6e3de;font-size:15px;color:#5a5650;&quot;&gt;&lt;div style=&quot;margin:0 0 0.5em;font-size:12px;letter-spacing:0.14em;text-transform:uppercase;color:#5a5650;&quot;&gt;주석&lt;/div&gt;
&lt;ol style=&quot;margin:0 0 1em;padding:0 0 0 22px;font-size:18px;line-height:1.6;color:#171615;&quot;&gt;
&lt;li style=&quot;margin:0 0 0.35em;&quot;&gt;
&lt;p style=&quot;margin:0 0 1em;font-size:18px;line-height:1.6;color:#171615;&quot;&gt;조석학자들은 이런 규칙적인 주기 성분을 분조라 부른다. 그중 주요한 태음 분조에는 기분 좋을 만큼 무미건조한 M2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조석 예보는 각기 속도와 크기가 다른 분조 수십 개를 더해 만든다. 그 값은 특정 항구 하나에 맞춰져 있다. &lt;/p&gt;
&lt;/li&gt;
&lt;li style=&quot;margin:0 0 0.35em;&quot;&gt;
&lt;p style=&quot;margin:0 0 1em;font-size:18px;line-height:1.6;color:#171615;&quot;&gt;그런 날이면 항만 사무소에서는 조석표 한쪽 모서리에 손으로 쓴 쪽지를 테이프로 붙인다. 늘 똑같은 세 단어가 적혀 있는데, 예의 바른 말이 아니라 옮기지는 않겠다. &lt;/p&gt;
&lt;/li&gt;
&lt;/ol&gt;
&lt;/div&gt;</content:encoded><category>에세이</category></item><item><title>인쇄된 수위보다 더 내려간 물</title><link>https://journal.folionine.com/ko/notes/low-water/</link><guid isPermaLink="true">https://journal.folionine.com/ko/notes/low-water/</guid><description>차가운 북동풍이 항구의 수위를 조석표에 적힌 것보다 20센티미터 더 낮췄다. 창문에 붙은 쪽지에 그렇게 적혀 있었다.</description><pubDate>Sun, 18 Jan 2026 00:00:00 GMT</pubDate><content:encoded>&lt;p style=&quot;margin:0 0 1em;font-size:18px;line-height:1.6;color:#171615;&quot;&gt;밤새 고원에서 불어 내려온 찬바람에 아침이 되자 항구의 수위는 조석표에 적힌 것보다 20센티미터 더 낮아져 있었다. 어시장 옆 낡은 계단에는 지난겨울 이후 아무도 본 적 없는 초록색 띠가 드러나 있었다. 사무실 창문에 붙은 조석표 모서리에는 손으로 쓴 쪽지가 테이프로 붙어 있었다. 늘 그렇듯, 똑같은 세 단어였다. 한 소년이 그 말을 공책에 옮겨 적고 있었다. 나는 그를 말리지 않았다.&lt;/p&gt;
</content:encoded><category>짧은 글</category></item><item><title>독자들이 여백에 남긴 글</title><link>https://journal.folionine.com/ko/notes/margins/</link><guid isPermaLink="true">https://journal.folionine.com/ko/notes/margins/</guid><description>세 명의 독자가 50년에 걸쳐 연필로 주석을 달아 둔 오래된 에세이 선집의 중고 책 한 권.</description><pubDate>Sun, 07 Dec 2025 00:00:00 GMT</pubDate><content:encoded>&lt;p style=&quot;margin:0 0 1em;font-size:18px;line-height:1.6;color:#171615;&quot;&gt;이번 주에 커피 한 잔 값으로 중고 에세이집을 샀다. 얼핏 50년쯤에 걸쳐 세 명의 독자가 여백에 글을 남겼다. 한 사람은 만년필로 물음표만 잔뜩 적었고, 한 사람은 연필로 밑줄을 긋고 “그래”라고 썼으며, 또 한 사람은 볼펜으로 앞선 이들의 글을 바로잡았다. 볼펜으로 쓴 독자는 늘 옳고, 나는 그가 제일 마음에 들지 않는다. 세 사람 덕분에 책은 더 좋아졌다.&lt;/p&gt;
</content:encoded><category>짧은 글</category></item><item><title>필크로의 긴 휴가</title><link>https://journal.folionine.com/ko/essays/the-pilcrows-long-holiday/</link><guid isPermaLink="true">https://journal.folionine.com/ko/essays/the-pilcrows-long-holiday/</guid><description>문단 기호 ¶는 한때 새로운 생각이 시작될 때마다 붉은색으로 표시되었다. 그러다 인쇄공들은 그 자리를 비워 두고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각 문단 첫머리에 남은 유령에 대하여.</description><pubDate>Sun, 02 Nov 2025 00:00:00 GMT</pubDate><content:encoded>&lt;p style=&quot;margin:0 0 1em;font-size:18px;line-height:1.6;color:#171615;&quot;&gt;&lt;span style=&quot;color:#b3241b;text-transform:uppercase;letter-spacing:0.06em;font-size:0.86em;&quot;&gt;인쇄된 책의 어느 문단&lt;/span&gt; 첫머리든 들여다보면 작은 빈자리가 보인다. 들여쓰기다. 아무것도 아닌 듯 보이고, 실은 대체로 아무것도 아니다. 한때 기호가 있던 자리다.&lt;/p&gt;
&lt;p style=&quot;margin:0 0 1em;font-size:18px;line-height:1.6;color:#171615;&quot;&gt;그 기호는 필크로, ¶다. 뒤집어 겹쳐 쓴 글자처럼 생긴 이 기호는 워드 프로세서에서 숨은 문자를 표시하도록 설정하면 지금도 볼 수 있다. 글쓰기의 역사에서 아주 오랜 세월 동안 그것은 전혀 숨겨져 있지 않았다. 새로운 생각의 첫머리에 놓여, 흔히 붉은색으로 칠해졌고, 한 논의가 끝나고 다른 논의가 시작되었음을 독자에게 알렸다.&lt;/p&gt;
&lt;h2 id=&quot;기호가-된-글자&quot; style=&quot;margin:1.6em 0 0.5em;font-size:22px;line-height:1.25;font-weight:600;color:#171615;&quot;&gt;기호가 된 글자&lt;/h2&gt;
&lt;p style=&quot;margin:0 0 1em;font-size:18px;line-height:1.6;color:#171615;&quot;&gt;필크로는 글자에서 시작되었다. 라틴어로 글을 쓰던 필사자들은 새로운 절, &lt;em style=&quot;font-style:italic;&quot;&gt;capitulum&lt;/em&gt;을 C자로 표시했다. 세월이 흐르면서 C에는 세로획이 하나 더해지고, 다시 하나가 더해졌으며, 둥근 안쪽은 메워졌다. 마침내 더는 글자처럼 보이지 않고 작은 검은 깃발처럼 보이게 되었다.&lt;sup style=&quot;line-height:0;font-size:0.75em;&quot;&gt;&lt;span style=&quot;color:#b3241b;&quot;&gt;1&lt;/span&gt;&lt;/sup&gt; 이 표시는 본문을 쓴 뒤 다른 사람이 다른 잉크로 덧붙이는 경우가 많았다. 그 사람은 붉은색을 넣는 일을 맡은 채식공이었다.&lt;/p&gt;
&lt;p style=&quot;margin:0 0 1em;font-size:18px;line-height:1.6;color:#171615;&quot;&gt;이런 분업에서 문제가 시작되었다. 필사자는 채식공이 채워 넣을 수 있도록 각 절의 첫머리에 자리를 비워 두었다. 인쇄술이 등장한 뒤에도 인쇄공들은 그 관습을 이어, 검은 글자를 조판하고 나중에 손으로 붉은 표시를 더할 자리를 남겨 두었다. 그러나 점점 더 자주, 그 손길은 오지 않았다.&lt;sup style=&quot;line-height:0;font-size:0.75em;&quot;&gt;&lt;span style=&quot;color:#b3241b;&quot;&gt;2&lt;/span&gt;&lt;/sup&gt; 빈칸을 그대로 둔 채 책이 세상에 나왔다. 독자들은 빈칸에 익숙해졌다. 마침내 빈칸 자체가 기호가 되었다.&lt;/p&gt;
&lt;h2 id=&quot;유령이-된-들여쓰기&quot; style=&quot;margin:1.6em 0 0.5em;font-size:22px;line-height:1.25;font-weight:600;color:#171615;&quot;&gt;유령이 된 들여쓰기&lt;/h2&gt;
&lt;p style=&quot;margin:0 0 1em;font-size:18px;line-height:1.6;color:#171615;&quot;&gt;나는 이 이야기가 페이지의 역사에서 가장 마음을 움직이는 이야기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한다. 당신이 지금껏 읽은 모든 들여쓰기 문단은 첫머리에 작은 결락을 품고 있다. 아무도 그려 넣지 않은 붉은 기호의 윤곽이다. 우리는 오백 년 동안 필크로의 유령을 읽으면서 그것을 여백이라 불러 왔다.&lt;/p&gt;
&lt;p style=&quot;margin:0 0 1em;font-size:18px;line-height:1.6;color:#171615;&quot;&gt;이 페이지들은 붉은색을 조금 되돌려 놓는다. 에세이의 각 문단에는 두 번째 잉크로 여백에 번호를 달고, 모든 에세이의 첫 단어들은 붉은색으로 인쇄한다. 채식공이 글의 시작을 표시했을 방식 그대로다. 향수 때문은 아니다. 번호는 쓸모가 있다. 독자가 내게 동의하지 않는 정확한 대목을 가리킬 수 있게 해 주니까. 나는 붉은 표시가 애초부터 늘 그 일을 위해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top:2em;padding-top:1em;border-top:1px solid #e6e3de;font-size:15px;color:#5a5650;&quot;&gt;&lt;div style=&quot;margin:0 0 0.5em;font-size:12px;letter-spacing:0.14em;text-transform:uppercase;color:#5a5650;&quot;&gt;주석&lt;/div&gt;
&lt;ol style=&quot;margin:0 0 1em;padding:0 0 0 22px;font-size:18px;line-height:1.6;color:#171615;&quot;&gt;
&lt;li style=&quot;margin:0 0 0.35em;&quot;&gt;
&lt;p style=&quot;margin:0 0 1em;font-size:18px;line-height:1.6;color:#171615;&quot;&gt;그 이름에는 프랑스어와 영어를 거쳐 온 긴 사연이 있다. 그리스어 &lt;em style=&quot;font-style:italic;&quot;&gt;paragraphos&lt;/em&gt;, 곧 여백에 찍는 표시에서 비롯했다. 영어에 들어왔을 무렵에는 여러 형태 중 하나로 “pylcrafte”가 되었다. 그때는 철자를 훨씬 느슨하게 다뤘다. &lt;/p&gt;
&lt;/li&gt;
&lt;li style=&quot;margin:0 0 0.35em;&quot;&gt;
&lt;p style=&quot;margin:0 0 1em;font-size:18px;line-height:1.6;color:#171615;&quot;&gt;경제 논리는 간단했다. 검은 글자는 한 시간에 수백 장씩 찍어낼 수 있었지만, 빨간 표시는 하나씩 그려 넣어야 했다. 하나는 쌌고 다른 하나는 비쌌다. 결국 싼 쪽이 이겼다. &lt;/p&gt;
&lt;/li&gt;
&lt;/ol&gt;
&lt;/div&gt;</content:encoded><category>에세이</category></item><item><title>일요일의 종소리</title><link>https://journal.folionine.com/ko/notes/the-bell-on-a-sunday/</link><guid isPermaLink="true">https://journal.folionine.com/ko/notes/the-bell-on-a-sunday/</guid><description>빵집은 일요일이면 문을 닫는데도, 아홉 시가 조금 지나면 거리의 두 창문이 열린다. 습관은 빵보다 오래간다.</description><pubDate>Sun, 12 Oct 2025 00:00:00 GMT</pubDate><content:encoded>&lt;p style=&quot;margin:0 0 1em;font-size:18px;line-height:1.6;color:#171615;&quot;&gt;시장 뒤편의 빵집은 일요일이면 문을 닫는다. 그래도 아홉 시가 조금 지나면 거리의 두 창문이 열리고, 1분쯤 열려 있다가 다시 닫힌다. 나는 세 번 연달아 일요일마다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아무도 빵을 기다리고 있지 않았다. 그들은 습관처럼 종소리를 기다리고 있었고, 종이 울리지 않자 조금 실망한 채 아침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내 생각엔, 한 주에도 나름의 모양이 있다는 사실에 조금은 안도하면서.&lt;/p&gt;
</content:encoded><category>짧은 글</category></item><item><title>빵집 주인을 위한 종소리</title><link>https://journal.folionine.com/ko/essays/a-bell-for-the-bakers/</link><guid isPermaLink="true">https://journal.folionine.com/ko/essays/a-bell-for-the-bakers/</guid><description>시장 뒤편 골목에서 빵집 주인이 두 번째 빵을 꺼내면 손종을 울린다. 시간을 알려 주는 소리의 짧은 역사.</description><pubDate>Sun, 07 Sep 2025 00:00:00 GMT</pubDate><content:encoded>&lt;p style=&quot;margin:0 0 1em;font-size:18px;line-height:1.6;color:#171615;&quot;&gt;&lt;span style=&quot;color:#b3241b;text-transform:uppercase;letter-spacing:0.06em;font-size:0.86em;&quot;&gt;평일에는 아홉 시 십오&lt;/span&gt; 분에, 토요일에는 아홉 시 반에, 실내 시장 뒤편의 좁은 골목에서 손종이 울린다. 나무 손잡이가 달린 작은 놋쇠 종이다. 예전에 선생님이 쉬는 시간을 끝낼 때 쓰던 것과 같은 종류로, 그때그때 손에 밀가루가 묻어 있는 두 빵집 주인 중 한 사람이 울린다. 두 번째 빵이 오븐에서 나왔다는 뜻이다. 이 골목에서는 두 사람 중 누구도 태어나기 전부터 그 뜻으로 울려 왔다.&lt;/p&gt;
&lt;p style=&quot;margin:0 0 1em;font-size:18px;line-height:1.6;color:#171615;&quot;&gt;쉰 살 아래인 사람들은 아무도 모르는 듯하다. 젊은 주민들은 그 종소리가 멋스러운 장식이고, 방문객을 위한 작은 구경거리라고 생각한다. 나이 든 사람들은 코트를 걸친다.&lt;/p&gt;
&lt;h2 id=&quot;첫-번째-빵과-두-번째-빵&quot; style=&quot;margin:1.6em 0 0.5em;font-size:22px;line-height:1.25;font-weight:600;color:#171615;&quot;&gt;첫 번째 빵과 두 번째 빵&lt;/h2&gt;
&lt;p style=&quot;margin:0 0 1em;font-size:18px;line-height:1.6;color:#171615;&quot;&gt;빵집의 첫 번째 빵은 어딘가로 가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일하러 가는 사람들, 이른 등굣길에 아이를 데려다주는 사람들, 서서 끼니를 때우는 사람들. 여섯 시에 나오고 일곱 시면 다 팔린다. 두 번째 빵은 머무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점심때 먹을 빵, 열 시 전에는 더는 계단을 오르지 않는 삼 층 할머니를 위한 롤빵, 이웃이 그분께 위층으로 가져다드리는 빵 한 덩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 0 1em;font-size:18px;line-height:1.6;color:#171615;&quot;&gt;두 번째 빵은 성격이 다른 약속이기에 종이 생겼다. 손님들은 어딘가 가는 길에 가게 앞을 지나치지 않는다. 불러야만 온다. 전화기가 생기기 전, 부엌에 믿을 만한 시계를 둔 사람이 없던 시절에는, 따뜻한 무언가가 기다리고 있다고 골목에 알릴 방법은 소리뿐이었다.&lt;sup style=&quot;line-height:0;font-size:0.75em;&quot;&gt;&lt;span style=&quot;color:#b3241b;&quot;&gt;1&lt;/span&gt;&lt;/sup&gt;&lt;/p&gt;
&lt;h2 id=&quot;소리로-시간을-알리는-시계&quot; style=&quot;margin:1.6em 0 0.5em;font-size:22px;line-height:1.25;font-weight:600;color:#171615;&quot;&gt;소리로 시간을 알리는 시계&lt;/h2&gt;
&lt;p style=&quot;margin:0 0 1em;font-size:18px;line-height:1.6;color:#171615;&quot;&gt;종소리가 시간을 보여 주지 않고도 시간을 잰다는 점이 좋다. 읽을 수는 없고 들을 수만 있다. 그리고 창문마다 다르게 들린다. 모퉁이에서는 날카롭게, 안뜰 너머에서는 먹먹하게, 꼭대기 층에서는 거의 들리지 않게. 그곳 사람들은 늘 아래층 사람들이 소식을 위로 전해 주리라 믿어 왔다. 그런 점에서 종은 시각만이 아니라 골목, 그 깊이와 이웃 간의 정까지 잰다.&lt;/p&gt;
&lt;p style=&quot;margin:0 0 1em;font-size:18px;line-height:1.6;color:#171615;&quot;&gt;몇 년 전, 빵집 주인들에게 이제는 누구나 휴대전화를 갖고 있는데도 종을 계속 울릴 거냐고 물었다. 둘 중 나이가 더 많은 사람이 빵이 준비되는 한은 계속 울릴 거라고 했다. 질문이 받을 만한 것보다 훨씬 나은 대답이었다.&lt;sup style=&quot;line-height:0;font-size:0.75em;&quot;&gt;&lt;span style=&quot;color:#b3241b;&quot;&gt;2&lt;/span&gt;&lt;/sup&gt;&lt;/p&gt;
&lt;div style=&quot;margin-top:2em;padding-top:1em;border-top:1px solid #e6e3de;font-size:15px;color:#5a5650;&quot;&gt;&lt;div style=&quot;margin:0 0 0.5em;font-size:12px;letter-spacing:0.14em;text-transform:uppercase;color:#5a5650;&quot;&gt;주석&lt;/div&gt;
&lt;ol style=&quot;margin:0 0 1em;padding:0 0 0 22px;font-size:18px;line-height:1.6;color:#171615;&quot;&gt;
&lt;li style=&quot;margin:0 0 0.35em;&quot;&gt;
&lt;p style=&quot;margin:0 0 1em;font-size:18px;line-height:1.6;color:#171615;&quot;&gt;부엌 시계는 이 연작에서 나중에 다룰 주제다. 아니, 적어도 사촌쯤 되는 주제다. 시계는 좀처럼 맞지 않고, 거의 아무도 믿지 않는다. 그건 맞지 않는다는 것과는 다른 문제다. &lt;/p&gt;
&lt;/li&gt;
&lt;li style=&quot;margin:0 0 0.35em;&quot;&gt;
&lt;p style=&quot;margin:0 0 1em;font-size:18px;line-height:1.6;color:#171615;&quot;&gt;물어본 사람은 나였다. 전통에 관한 인용구를 기대하고 있었다. 빵에 관한 말을 들었는데, 같은 뜻을 훨씬 쓸모 있게 전하는 말이었다. &lt;/p&gt;
&lt;/li&gt;
&lt;/ol&gt;
&lt;/div&gt;</content:encoded><category>에세이</category></item><item><title>서랍 속 시간표</title><link>https://journal.folionine.com/ko/notes/a-timetable-in-a-drawer/</link><guid isPermaLink="true">https://journal.folionine.com/ko/notes/a-timetable-in-a-drawer/</guid><description>주방 서랍을 정리하다가 2009년 버스 시간표를 발견했다. 거기 적힌 노선은 모두 아직 운행 중이고, 어느 노선도 예전과 같은 시각에 다니지 않는다.</description><pubDate>Sun, 10 Aug 2025 00:00:00 GMT</pubDate><content:encoded>&lt;p style=&quot;margin:0 0 1em;font-size:18px;line-height:1.6;color:#171615;&quot;&gt;주방 서랍을 정리하다가 2009년 버스 시간표를 발견했다. 여덟 겹으로 접혀 천처럼 부드러웠다. 거기 적힌 노선은 모두 여전히 운행한다. 그중 어느 노선도 예전과 같은 시각에 다니지 않는다. 14번 버스는 예전엔 매시 7분에 출발했는데, 이제는 12분에 출발한다. 그 둘 사이 어딘가에서 회의가 열렸고, 모두의 아침에서 다섯 분씩이 옮겨졌는데, 누구도 그렇게 하기로 동의했다고 기억하지 않는다.&lt;/p&gt;
</content:encoded><category>짧은 글</category></item><item><title>늦은 편지 답장에 대하여</title><link>https://journal.folionine.com/ko/essays/on-answering-letters-late/</link><guid isPermaLink="true">https://journal.folionine.com/ko/essays/on-answering-letters-late/</guid><description>한 독자가 삼월에 내게 편지를 보냈다. 나는 칠월에 답했다. 짧은 사과로 시작한 글은 중간쯤 가서 답장이 늦어진 데 대한 변명으로 바뀌었다.</description><pubDate>Sun, 06 Jul 2025 00:00:00 GMT</pubDate><content:encoded>&lt;p style=&quot;margin:0 0 1em;font-size:18px;line-height:1.6;color:#171615;&quot;&gt;&lt;span style=&quot;color:#b3241b;text-transform:uppercase;letter-spacing:0.06em;font-size:0.86em;&quot;&gt;한 독자가 3월에&lt;/span&gt; 페리호에 관한 내 에세이를 두고 편지를 보내왔다. 그녀는 맞은편 해안에서 자랐고, 뱃고동 소리를 다르게 기억하고 있었다. 긴 울림 한 번이 아니라 짧은 울림 두 번이었고, 안개가 낀 날에만 울렸다고 했다. 세 쪽이나 되는 조심스럽고 다정한 편지였다. 그런 편지를 쓰려면 저녁 한때가 걸린다. 나는 지난주에야 답장을 썼다. 지금은 칠월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 0 1em;font-size:18px;line-height:1.6;color:#171615;&quot;&gt;그녀는 더 빨리 답장을 받을 만한 사람이었으니, 여기 공개적으로 사과하고 싶다. 그러면서도 그녀가 더 빠른 답장을 받을 만했는지는 잘 모르겠다고 말하고 싶다.&lt;/p&gt;
&lt;h2 id=&quot;일의-속도&quot; style=&quot;margin:1.6em 0 0.5em;font-size:22px;line-height:1.25;font-weight:600;color:#171615;&quot;&gt;일의 속도&lt;/h2&gt;
&lt;p style=&quot;margin:0 0 1em;font-size:18px;line-height:1.6;color:#171615;&quot;&gt;요즘은 메시지를 보내는 데 걸린 시간 안에 답을 바라는 듯한 메시지가 대부분이다. 그녀의 편지 같은 글은 다른 무언가를 청한다. 일부러 천천히 쓴 글이었고, 그 느림 자체가 편지의 말이기도 했다. 나는 이 일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으니, 당신도 함께 생각해 주었으면 한다고. 그날 저녁 바로 쓴 답장은 예의 바른 답장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문제를 받아들이기보다 닫아 버리는, 일종의 거절이기도 했을 것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 0 1em;font-size:18px;line-height:1.6;color:#171615;&quot;&gt;그래서 나는 그 편지를 붙들고 생각했다. 다시 페리호에 가 보았다. 갑판원에게 안개 속 신호에 대해 물었더니, 그는 내가 배가 뜨는지 묻기라도 한 듯 나를 바라보더니, 한참 동안 설명해 주었다. 그녀가 옳았다고.&lt;sup style=&quot;line-height:0;font-size:0.75em;&quot;&gt;&lt;span style=&quot;color:#b3241b;&quot;&gt;1&lt;/span&gt;&lt;/sup&gt; 나이 든 수영객 두 명에게도 물었는데, 둘은 서로의 말과 그녀의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 항만 규정도 읽어 보았다. 아무것도 결론 내주지 않는데다 무척 길었다. 답장을 쓸 때쯤에는 3월에 보냈을 답장보다 나은 답을 갖게 되었고, 끝에 덧붙일 새로운 질문도 세 가지나 생겼다.&lt;/p&gt;
&lt;h2 id=&quot;작은-원칙-하나&quot; style=&quot;margin:1.6em 0 0.5em;font-size:22px;line-height:1.25;font-weight:600;color:#171615;&quot;&gt;작은 원칙 하나&lt;/h2&gt;
&lt;p style=&quot;margin:0 0 1em;font-size:18px;line-height:1.6;color:#171615;&quot;&gt;내 무질서를 미덕인 양 내세우고 싶지는 않다. 당장 답해야 하는 편지도 있고, 그런 편지에도 나는 답을 늦춘 적이 있다. 하지만 서점을 하는 친구에게서 빌려 온 원칙 하나를 지키기 시작했다. 짧은 메시지에는 빨리 답하고, 느린 편지에는 천천히 답할 것. 그 반대로는 절대 하지 말 것.&lt;/p&gt;
&lt;p style=&quot;margin:0 0 1em;font-size:18px;line-height:1.6;color:#171615;&quot;&gt;그녀는 답장을 보내며, 내 답장이 그해 첫 따뜻한 날 아침에 도착했다고 했다. 기다릴 만한 가치가 있었다고도 했다. 아마 친절한 말이었을 것이다. 그래도 나는 그 편지를 간직하고 있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top:2em;padding-top:1em;border-top:1px solid #e6e3de;font-size:15px;color:#5a5650;&quot;&gt;&lt;div style=&quot;margin:0 0 0.5em;font-size:12px;letter-spacing:0.14em;text-transform:uppercase;color:#5a5650;&quot;&gt;주석&lt;/div&gt;
&lt;ol style=&quot;margin:0 0 1em;padding:0 0 0 22px;font-size:18px;line-height:1.6;color:#171615;&quot;&gt;
&lt;li style=&quot;margin:0 0 0.35em;&quot;&gt;
&lt;p style=&quot;margin:0 0 1em;font-size:18px;line-height:1.6;color:#171615;&quot;&gt;안개 속에서는 짧게 두 번, 맑은 날 출항할 때는 길게 한 번. 이 글은 주석을 달아 바로잡았다. 교정 의견은 내가 받는 편지 중 가장 쓸모 있고, 가장 빨리 답하는 편지다. &lt;/p&gt;
&lt;/li&gt;
&lt;/ol&gt;
&lt;/div&gt;</content:encoded><category>에세이</category></item><item><title>짧은 뱃고동 두 번</title><link>https://journal.folionine.com/ko/notes/two-short-blasts/</link><guid isPermaLink="true">https://journal.folionine.com/ko/notes/two-short-blasts/</guid><description>독자의 정정은 갑판원의 확인을 받았다. 안개가 끼면 페리는 긴 뱃고동을 한 번이 아니라 짧게 두 번 울린다고 한다.</description><pubDate>Sun, 15 Jun 2025 00:00:00 GMT</pubDate><content:encoded>&lt;p style=&quot;margin:0 0 1em;font-size:18px;line-height:1.6;color:#171615;&quot;&gt;건너편 해안에서 자란 독자가 편지를 보내, 안개가 끼면 페리는 긴 뱃고동을 한 번이 아니라 짧게 두 번 울린다고 알려 주었다. 갑판원도 확인해 주었다. 긴 뱃고동은 맑은 아침에 울린다. 글을 고쳤고, 고맙게 생각한다. 누군가 끝까지 읽었다는 걸 증명해 주는 데는 정정만 한 것이 없으니까.&lt;/p&gt;
</content:encoded><category>짧은 글</category></item><item><title>누구도 기다려 주지 않는 여객선</title><link>https://journal.folionine.com/ko/essays/the-ferry-that-waits-for-no-one/</link><guid isPermaLink="true">https://journal.folionine.com/ko/essays/the-ferry-that-waits-for-no-one/</guid><description>먼 해안으로 가는 6:40 배는 누구의 기억 속에서도 늘 정시에 떠났다. 기다려 주지 않는 배가 마을에 가르쳐 주는 것.</description><pubDate>Sun, 04 May 2025 00:00:00 GMT</pubDate><content:encoded>&lt;p style=&quot;margin:0 0 1em;font-size:18px;line-height:1.6;color:#171615;&quot;&gt;&lt;span style=&quot;color:#b3241b;text-transform:uppercase;letter-spacing:0.06em;font-size:0.86em;&quot;&gt;첫 배는 일곱 시&lt;/span&gt; 20분 전에 떠나고, 정말 일곱 시 20분 전에 떠난다. 여기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기 때문에 나도 그렇게 쓴다. 뒷부분에 똑같이 힘을 주어 말한다. 친구를 두고 그녀는 정직하고, 정말 정직하다고 말하듯이. 6:39에서 50초가 되면 승강판이 올라간다. 그때 부두를 달려 내려오는 당신을 보면, 갑판원은 안쓰러운 눈길을 보내고도 움직이지 않는다.&lt;/p&gt;
&lt;p style=&quot;margin:0 0 1em;font-size:18px;line-height:1.6;color:#171615;&quot;&gt;나도 두 번 그런 사람이었다. 처음에는 화가 치밀었다. 두 번째에는 갑판원의 연민이 진심이라는 것, 그리고 바로 그게 요점이라는 것을 알았다.&lt;/p&gt;
&lt;h2 id=&quot;시계가-된-배&quot; style=&quot;margin:1.6em 0 0.5em;font-size:22px;line-height:1.25;font-weight:600;color:#171615;&quot;&gt;시계가 된 배&lt;/h2&gt;
&lt;p style=&quot;margin:0 0 1em;font-size:18px;line-height:1.6;color:#171615;&quot;&gt;정확히 시간을 지키는 여객선은 편의가 아니다. 하나의 도구다. 건너편 해안 사람들은 출항 1분 전에 물 건너로 울려 퍼지는 뱃고동 소리에 맞춰 아침을 시작한다. 빵집은 그 소리를 들으면 덧문을 열고, 사계절 내내 바위에서 수영하는 노인들은 그 소리를 듣고 이제 몸이 충분히 차가워졌는지 가늠해 물에서 나온다.&lt;sup style=&quot;line-height:0;font-size:0.75em;&quot;&gt;&lt;span style=&quot;color:#b3241b;&quot;&gt;1&lt;/span&gt;&lt;/sup&gt; 아무도 이 일을 계획하지 않았다. 배가 오랫동안 시간을 정확히 지키자 마을은 그 정확함을 중심으로 스스로 자리를 잡았다. 정원이 담장을 중심으로 자라나는 것처럼.&lt;/p&gt;
&lt;p style=&quot;margin:0 0 1em;font-size:18px;line-height:1.6;color:#171615;&quot;&gt;여객선이 늦게 오는 사람들을 기다리기 시작한다면, 더 친절해지는 게 아니다. 모호해질 뿐이다. 부두에 있는 사람들 모두가 서로와 흥정을 벌이게 될 테니까. 유모차를 끄는 여자에게 1분, 늘 늦는 소년에게 1분, 나에게 1분. 뱃고동은 6:41에 울리고, 그다음에는 6:43에 울릴 테고, 수영하는 사람들은 물속에 너무 오래 머물게 될 것이다.&lt;/p&gt;
&lt;h2 id=&quot;기다려-주지-않는-친절&quot; style=&quot;margin:1.6em 0 0.5em;font-size:22px;line-height:1.25;font-weight:600;color:#171615;&quot;&gt;기다려 주지 않는 친절&lt;/h2&gt;
&lt;p style=&quot;margin:0 0 1em;font-size:18px;line-height:1.6;color:#171615;&quot;&gt;갑판원이 승강판을 내리지 않을 때 지키려는 것은 다른 모든 사람의 아침이다. 그가 나에게 보내는 건 연민이지만, 그가 충실히 따르는 것은 시간표다. 다시 말해, 제시간에 온 마흔 사람을 위한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나는 이 점에 더 마음이 움직인다. 대부분의 기관은 눈앞에 있는 사람에게 맞춰 주고 그것을 서비스라고 부른다. 여객선은 누구에게도 맞춰 주지 않으면서, 그걸 아무 일도 아닌 듯 여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 0 1em;font-size:18px;line-height:1.6;color:#171615;&quot;&gt;7:20에 두 번째 배가 있다. 그것도 다들 안다.&lt;sup style=&quot;line-height:0;font-size:0.75em;&quot;&gt;&lt;span style=&quot;color:#b3241b;&quot;&gt;2&lt;/span&gt;&lt;/sup&gt; 첫 배를 놓쳤다고 길에 발이 묶인 사람은 없다. 그저 늦었을 뿐이고, 여기서 늦음은 스스로 감당하는 일이다. 배를 탓할 수는 없다. 배는 일곱 시 20분 전에 떠났다.&lt;/p&gt;
&lt;div style=&quot;margin-top:2em;padding-top:1em;border-top:1px solid #e6e3de;font-size:15px;color:#5a5650;&quot;&gt;&lt;div style=&quot;margin:0 0 0.5em;font-size:12px;letter-spacing:0.14em;text-transform:uppercase;color:#5a5650;&quot;&gt;주석&lt;/div&gt;
&lt;ol style=&quot;margin:0 0 1em;padding:0 0 0 22px;font-size:18px;line-height:1.6;color:#171615;&quot;&gt;
&lt;li style=&quot;margin:0 0 0.35em;&quot;&gt;
&lt;p style=&quot;margin:0 0 1em;font-size:18px;line-height:1.6;color:#171615;&quot;&gt;그들은 넷이고, 모두 일흔이 넘었다. 매일 아침 물 온도를 두고 다투다가 뱃고동 소리로 결판을 낸다. 소리가 날 때까지 물속에 남아 있는 사람이 이기는 것이다. &lt;/p&gt;
&lt;/li&gt;
&lt;li style=&quot;margin:0 0 0.35em;&quot;&gt;
&lt;p style=&quot;margin:0 0 1em;font-size:18px;line-height:1.6;color:#171615;&quot;&gt;7:20 배는 그만큼 시간을 잘 지키지 않는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두 번째 배니까. 그 배의 임무는 너그러이 용서해 주는 것이다. &lt;/p&gt;
&lt;/li&gt;
&lt;/ol&gt;
&lt;/div&gt;</content:encoded><category>에세이</category></item><item><title>각주 예찬</title><link>https://journal.folionine.com/ko/essays/in-praise-of-the-footnote/</link><guid isPermaLink="true">https://journal.folionine.com/ko/essays/in-praise-of-the-footnote/</guid><description>각주는 첫 번째 목소리 아래 놓인 두 번째 목소리다. 작가가 작은 활자로 자기 자신과 논쟁하는 목소리. 페이지에서 가장 조용한 부분을 옹호하는 글이다.</description><pubDate>Sun, 02 Mar 2025 00:00:00 GMT</pubDate><content:encoded>&lt;p style=&quot;margin:0 0 1em;font-size:18px;line-height:1.6;color:#171615;&quot;&gt;&lt;span style=&quot;color:#b3241b;text-transform:uppercase;letter-spacing:0.06em;font-size:0.86em;&quot;&gt;각주는 평판이 나쁘고&lt;/span&gt;, 대개 그럴 만하다. 학자들이 공공연히 펼치기 두려운 논쟁을 숨기는 곳, 변호사들이 중요한 조항을 파묻는 곳, 독자를 골탕 먹이며 재치를 부리는 부류의 소설가들이 숨어드는 곳이다.&lt;sup style=&quot;line-height:0;font-size:0.75em;&quot;&gt;&lt;span style=&quot;color:#b3241b;&quot;&gt;1&lt;/span&gt;&lt;/sup&gt; 사람들이 각주가 싫다고 말할 때는 대개 페이지 맨 아래를 내려다보게 해 놓고, 정작 중요한 대화는 처음부터 줄곧 거기서 오가고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만드는 일이 싫다는 뜻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 0 1em;font-size:18px;line-height:1.6;color:#171615;&quot;&gt;그래도 나는 각주를 옹호하고 싶다. 각주의 나쁜 평판은 잘못된 사용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하며, 잘 쓰인 각주는 독서의 소소한 즐거움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lt;/p&gt;
&lt;h2 id=&quot;두-가지-목소리&quot; style=&quot;margin:1.6em 0 0.5em;font-size:22px;line-height:1.25;font-weight:600;color:#171615;&quot;&gt;두 가지 목소리&lt;/h2&gt;
&lt;p style=&quot;margin:0 0 1em;font-size:18px;line-height:1.6;color:#171615;&quot;&gt;좋은 각주는 두 번째 목소리다. 본문은 논증의 속도로 말하고, 각주는 그 곁에 다가와 논증이 미처 담을 겨를이 없는 말을 건넨다. 출처. 의심. 문단 안에 넣었다면 흐름을 깨뜨렸을 농담. 독자는 귀 기울일 수도, 그러지 않을 수도 있다. 그 선택이야말로 핵심이다. 각주는 페이지에서 유일하게 허락을 구하는 부분이다.&lt;/p&gt;
&lt;p style=&quot;margin:0 0 1em;font-size:18px;line-height:1.6;color:#171615;&quot;&gt;그래서 나는 내 각주를 본문 아래가 아니라 옆에 둔다. 넓은 화면에서는 여백에, 각주가 속한 문장 옆에 놓여 두 번째 목소리가 첫 번째 목소리와 같은 순간에 들린다.&lt;sup style=&quot;line-height:0;font-size:0.75em;&quot;&gt;&lt;span style=&quot;color:#b3241b;&quot;&gt;2&lt;/span&gt;&lt;/sup&gt; 여백이 없는 휴대전화에서는 문고본의 각주처럼 다시 글 끝으로 간다. 어느 쪽이든 본문은 각주를 기다리느라 멈추지 않는다.&lt;/p&gt;
&lt;h2 id=&quot;각주를-위한-원칙&quot; style=&quot;margin:1.6em 0 0.5em;font-size:22px;line-height:1.25;font-weight:600;color:#171615;&quot;&gt;각주를 위한 원칙&lt;/h2&gt;
&lt;p style=&quot;margin:0 0 1em;font-size:18px;line-height:1.6;color:#171615;&quot;&gt;나는 한 가지 원칙을 지킨다. 일부러 어길 때만 예외다. 각주는 내용을 보탤 수는 있어도, 구해내서는 안 된다. 문장이 뜻을 이루려면 각주가 필요하다면 그 문장은 잘못된 것이고, 각주는 반창고에 불과하다. 시험 삼아 각주를 전부 빼고 에세이를 읽어 보라. 그래도 글이 서 있다면 각주는 선물이다. 쓰러진다면 각주는 비계였던 셈이고, 누군가 들어와 살기 전에 비계는 걷어내야 한다.&lt;/p&gt;
&lt;p style=&quot;margin:0 0 1em;font-size:18px;line-height:1.6;color:#171615;&quot;&gt;이렇게 읽으면 각주는 신뢰의 행위다. 각주는 독자에게 이렇게 말한다. 내가 흥미롭게 여긴 것이 여기 있으니, 당신도 흥미롭게 여길지는 스스로 판단하리라 믿는다고.&lt;/p&gt;
&lt;div style=&quot;margin-top:2em;padding-top:1em;border-top:1px solid #e6e3de;font-size:15px;color:#5a5650;&quot;&gt;&lt;div style=&quot;margin:0 0 0.5em;font-size:12px;letter-spacing:0.14em;text-transform:uppercase;color:#5a5650;&quot;&gt;주석&lt;/div&gt;
&lt;ol style=&quot;margin:0 0 1em;padding:0 0 0 22px;font-size:18px;line-height:1.6;color:#171615;&quot;&gt;
&lt;li style=&quot;margin:0 0 0.35em;&quot;&gt;
&lt;p style=&quot;margin:0 0 1em;font-size:18px;line-height:1.6;color:#171615;&quot;&gt;누구라고 이름을 대지는 않겠다. 어떤 책을 말하는지 알 것이다. 각주에도 각주가 달린다. &lt;/p&gt;
&lt;/li&gt;
&lt;li style=&quot;margin:0 0 0.35em;&quot;&gt;
&lt;p style=&quot;margin:0 0 1em;font-size:18px;line-height:1.6;color:#171615;&quot;&gt;여백에 적는 메모는 오래된 관습이다. 중세의 필경사와 독자들은 필사본의 여백을 교정과 논평으로, 때로는 추위에 대한 불평으로 채웠다. &lt;/p&gt;
&lt;/li&gt;
&lt;/ol&gt;
&lt;/div&gt;</content:encoded><category>에세이</category></item></channel></rss>